인체를 진화의 결과로 보는 과학적 관점으로부터 진화의학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원시인류가 출현한 이후 우리의 조상은 수백만 년 동안 수렵과 채집을 통하여 생활을 이어왔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의 유전자는 원시인의 것과 같다. 하지만 생활환경은 산업화를 거치면서 급격히 현대화되었고 이로 인해 우리 몸의 유전자는 우리가 생활하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로 남겨져 있다. 진화의학에서는 이러한 상태를 만성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예를 들어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의 식습관을 볼 때 인체가 매우 장기간에 걸쳐 특정한 음식에 적응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무엇이 최적의 것인지는 말하기 어려워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이런 식단에 잘 적응한 개인들이 유전자를 더 잘 퍼뜨려왔다고.

인류의 식습관은 크게 3번 변혁했다. 아주 느리고 안정적으로 진행됐던 수백 만 년의 수렵채집의 삶이 있었다. 1만 년 전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고 그 전에는 먹지 않았던 곡물이 주식이 되었던 삶이 있었다. 그리고 불과 100~200년에 걸쳐 인류의 식단에 농축 탄수화물의 비율이 매우 폭발적으로 증가한 삶이 있다.

만약 유전자가 바뀌지 않았다면 진화의학이 주목하는 수렵채집의 삶은 건강한 식습관의 하나의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수렵채집의 삶을 추정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몇 주 정도 굶기는 예사였고, 늘 음식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했다고 상상한다. 일례로 부시먼족 여성의 생리횟수는 일생을 통틀어도 20여 회 정도밖에 안한다고 알려진다. 부시먼족은 아무도 피임약을 쓰지 않지만 임신 걱정 없이 자유롭게 섹스를 한다. 이들은 실제로 4년에 한 번 아이를 갖는다. 이에 대한 압도적인 해석은 부시먼족 여성이 감염으로부터의 잦은 위협과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멜빈 코너와 캐럴 워스먼이라는 두 집요한 관찰자에 의해 부시먼족의 삶이 조명되기 전까지 그 학설은 짱짱하게 유지됐다. 처음에 이 둘은 부시먼족이 하루에 몇 시간만 사냥과 채집을 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둘러앉아 기름진 음식을 먹고 있는 것에 충격을 먹었다. 반복적인 관찰로 그들은 부시먼족이야말로 풍족한 사회의 원형이라고 단정 지었다. 물론 영양실조 때문에 4년에 한 번 아이를 갖는다는 학설은 폐기됐다.

녹색세계사의 저자인 클라이브 폰팅의 고증과 덧붙인 상상력은 수렵채집의 삶을 훨씬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과거의 수렵채집 집단들은 현재 남아있는 수렵채집의 집단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은 생태계에 살았으며, 이들은 인구의 수를 조절(주로 영아살해였다. 집단이 커지면 나누어지기도 했지만 드물었다)하는 방식으로 음식의 수요를 줄였다. 이들은 자기 지역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었으며 일년 중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서 어떤 식물이 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계절 변화에 따라 생활양식의 변화를 주었고 사회조직과도 잘 조화했다.

앞서 예를 든 부시먼족들은 연중 일정한 양의 노동력으로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농경민에 비하면 굉장히 게으른 생활이었다. 남자의 경우 1주일 꼬박 사냥을 하면 2~3주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여자들은 하루에 고작 2~3시간 일하는 것으로 남자들보다 두 배 이상의 식량을 가져왔다.

이들의 주식은 몬곤고 콩인데 몬곤고 콩은 일년 내내 얻을 수 있는 매우 든든한 식량으로 같은 양(220g)의 곡물에 비해 무려 5배의 칼로리(밥 1100g에 해당하는 칼로리)와 10배의 단백질(쇠고기 450g에 해당하는)을 갖고 있다. 이들은 순박하게 웃으며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몬곤고가 있는데 왜 힘들게 농사를 지어야 하나요? 그밖에도 부시먼족의 식용 목록은 84가지나 되고 이들은 보통 23가지 안에서 해결한다.

세상의 주변 지역으로 내몰렸음에도 이런 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철저하게 인구수가 조절되고 집단의 이동이 수월했던 시절엔 훨씬 더 식량을 얻기가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결과적으로 부시먼족 여성의 월경횟수는 3년이 넘는 수유기간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걸음마를 띤 나이에도 배가 고프면 엄마 젖을 먹으러 달려온다. 엄마 등에 매달려 있을 때는 배고플 때마다 언제든지 젖을 먹을 수 있도록 보자기가 최적화되어 있다.

극한의 환경에 적응한 넷실릭 이누잇족의 삶 역시 주변환경의 모든 면을 철저히 이용하여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유지한다. 현재 이누잇족은 캐나다의 허드슨만 북부와 서부에 사는데 원래 이들의 3분의 2정도는 지금의 북극권보다 훨씬 기후가 온화한 남쪽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6월쯤에는 빙판 위에서 바다표범을 사냥한다. 7월경에는 내지로 이동하여 고기잡이를 하거나 간혹 순록을 사냥한다. 8월에는 산란기에 올라오는 연어를 잡기 위해 강에 돌둑을 만든다. 8월 말에는 다시 순록 사냥을 위해 대규모로 모였다가 10월에는 연어 사냥을 하고 다시 나머지 겨울철에는 바다표범을 사냥한다. 모든 공동체 행사에서는 사람들이 배가 찢어지도록 먹었다.

과거의 수렵채집집단들은 현재의 수렵채집의 집단보다 훨씬 풍요롭고 상당히 여유로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들의 식단에서는 단백질의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포만감이 일찍 찾아오고 오래 유지되었다. 배부르면 그만 먹었으므로 한 끼의 식사량은 지금 서구인의 식습관에 비해 훨씬 적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당질의 섭취가 적었으므로 식후 인슐린의 분비도 적었다. 지방분해모드가 오래 유지되는 환경에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은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는 꼭 몸을 수고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 결과 이들에게 뷜렌도르프의 비너스란 그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비만의 여인(이들은 대부분 홀쭉했다)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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