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흥미로운 질문을 받았다.

"살 찌는 체질과 살이 안 찌는 체질이 정말 있나요?"

같은 양을 먹어도 누구는 살이 찌고, 누구는 살이 안 찐다. 정말 흥미로운 주제다.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에 대하여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우선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려면 비만이 되는 간단한 원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만은 "에너지 소비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 섭취가 지속되는 상태(즉, 에너지 섭취>에너지 소비)"다. 에너지 섭취와 에너지 소비 사이의 불균형이 아주 적더라도 결국은 체중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예로 0.3%의 과잉섭취를 30년간 지속하면 9kg의 체중이 증가될 수 있다.

에너지 섭취의 문제1 : 남들보다 '더'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유전적으로 비만한 생쥐(ob/ob)에서 ob gene의 확인은 획기적이었는데, 이는 비만과 관련된 하나의 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ob/ob 생쥐는 다른 쥐들에 비해 더 많이 먹었고, 인슐린 저항성이 있었고, 예상하듯이 심각하게 비만했다. ob 유전자의 산물은 그 유명한 렙틴(어원은 '마르다'는 뜻의 leptos)으로 지방세포에서 분비되어 뇌하수체를 통해 작용한다. 지방조직의 에너지 저장을 보고하는 것이 주 임무인데 렙틴의 농도가 높아지면 음식섭취가 감소하고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비만한 사람들에서 대부분은 렙틴이나 렙틴 수용체에 돌연변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렙틴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분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체중이 늘었을 것이며 왜 이 지경까지 왔는지 잘 모른다고 할 것이다. 렙틴 저항성 때문이다.

기아상태를 견디며 진화해 온 인류의 조상들은 에너지 밸런스에 대하여 하나의 기준을 갖고 있는데, 체중 증가는 모른 척 대충 눈 감고 넘어가고 체중 감소에는 예민하게 반응을 하라는 것이다. 이는 렙틴의 수치로도 나타나는데 체중이 10% 증가하면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 렙틴의 분비는 고작 20% 늘 뿐이지만, 체중이 10% 감소하면 렙틴의 분비는 절반 이상 감소한다.


에너지 섭취의 문제2 : 같은 양을 먹더라도 내가 '더' 에너지를 수확하는 것은 아닐까

2006년 네이쳐에 "An obesity-associated gut microbiome with increased capacity for energy harvest"라는 제목의 재밌는 논문이 실렸다. 요약하면 장내 박테리아가 어떤 것들이 더 많이 살고 있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에너지를 더 많이 수확하여 영양분을 더 많이 끌어오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장에는 어림잡아 약 500조 마리의 박테리아(대부분은 약 30종 정도)가 거주하는데 이들이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우리가 음식에 든 영양소를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출생 중에 처음으로 장에 정착하고, 다음에는 첫 수유 때 나머지가 정착한다. 아이가 한 살이 되면 일반 성인들의 전형적인 상태와 비슷해진다.

그런데 살찐 쥐와 날씬한 쥐, 뚱뚱한 사람과 마른 사람의 장내 세균총에 큰 차이가 있었다. 쥐나 사람이나 살찐 개체의 장에는 '피르미쿠트 계열'의 세균이 더 많았고, 마른 개체의 장에는 '박테로이드 계열'의 세균이 더 많았던 것. 실제로 마른 쥐들에게 피르미쿠트 계열의 세균을 이식하자 이들도 살이 찌기 시작했다.


에너지 소비의 문제 : 남들보다 '덜' 에너지를 쓰는 것은 아닐까

흔히 생각하듯이 비만한 사람들이 마른 사람들에 비해 '기초대사량이 적기 때문에' 살이 더 찌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주 크나큰 착각이다. 비만한 사람들의 하루 평균 에너지 소비는 실제로 마른 사람들에 비해 더 많다. 당연히 활동 제지방량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대신 이들은 그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먹는다.

그러나 비만한 사람들의 '에너지 소비' 문제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굶을 때 드라마틱하게 낮게 유지된다. 몸무게가 서서히 감소하면서 제지방도 감소하고, 교감 신경계의 활성도 감소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는 점점 낮아지는데, 정상 몸무게까지 감소하게 되면 원래 그 체중이었던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낮은 에너지 소비를 보이게 된다.

이는 아마도 유전적인 요인으로 생각된다. 콕 집어 이야기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사람이 열량을 지속적으로 제한하여 몸이 '기아 상태'로 인식되면 각 세포들의 대사율이 낮아지면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막게 된다. 인슐린 저항성은 각 세포들이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하도록 함((뇌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을 보지 않으려면)으로써, 혈당량을 정상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의 문제 : 고탄수화물 식이, 골격근의 양(운동 여부)

이는 보다 환경적인 요소이며, 살이 잘 찌고 안 찌는 체질을 논하기에는 보다 부차적인 것들이다. 미국에서의 비만 유병률의 빠른 증가는 '유전자의 변이'만으로 생각하기에는 진행이 너무 급격하다고 생각되는데 이는 '환경'의 문제일 수도 있다.

만약 식단의 탄수화물 비중이 높고, 그것도 정제당 혹은 단순당의 비율이 높다면 이것 자체가 비만해지기 쉬운 식단 구성이다. 뿐만 아니라 탄수화물은 단백질에 비해 음식을 대사시키고 저장하는데 필요한 에너지 소비가 훨씬 더 적다. 게다가 인슐린을 빠르게 상승시키므로 인슐린 저항성의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초대사량의 개인차가 존재한다면 이는 주로 골격근의 양(지방은 근육의 기초대사율보다 더 낮으며, 여자가 남자보다 기초대사율이 더 낮은 이유나 근육이 지방으로 대체되는 노인에서 기초대사율이 더 낮은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과 신체 크기와 관련이 있다. 안정 상태에서 골격근의 기초대사율은 20~30%를 차지한다. 게다가 같은 근육량이라도 지속적으로 근육을 훈련시킨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휴식 중에서도 기초대사율이 더 높아진다.


못다한 이야기 :)

내가 몇해 전 한의학도로서 훈련을 받을 때 "경험적으로 늑각의 각도가 예각인지 둔각인지에 따라 살이 잘 안찌고, 살이 잘 찌는 체질로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결론은 '글쎄다'. 혹은 '그럴 수도 있겠다.'

보다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개체가 성적인 과정을 진행(이를테면 사춘기)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인자는 '인슐린'이라고 한다. 풍족하게 분비되는 인슐린 군들이 개체의 에너지 상태 역시도 '풍족'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며, 이는 성의 에너지 비용을 할애해도 좋겠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성과 장수 사이의 거래'라는 개념이며 영국의 톰 커크우드가 1970년대에 내놓은 가설이다. 

기본적으로 늑각은 흉곽(rib cage)의 팽창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사춘기 때의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이다. 만약 이런 성의 에너지 비용을 치루지 않는다고 하면 미소년처럼 길고 호리한 체형이 될 지도 모른다. 어떤 시점이 되어서 '에너지가 풍족한 상태'가 꾸준히 유지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면 성적인 과정을 진행해도 될 것이다.

이들은 원래 남들보다 '잘' 먹었을 수도 있고, 남들과 같이 먹더라도 '더 많이' 에너지를 뽑아냈을 수도 있다. 그런 요인과 관계없이 부모가 입이 짧은 아이에게 GI가 높은 허접한 음식들을 많이 내줬을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가능성이며 그냥 설을 푼 것이라고 생각해주길, 그럼에도 몇 해전이나 지금이나 저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거부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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